한 번 발생한 갈등을 해소하는 일은 쉽지 않다. 떨어진 실적을 반등시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부임한 이재준 영진약품 대표이사는 일 년여 만에 노사갈등 해소와 실적 회복을 동시에 이뤘다.
"노사 행복엔 실적이 큰 역할을 한다" 이재준 대표가 수차례 강조했다. 경영자가 기업을 제대로 경영해야 노사 모두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영실적을 높이기 위한 방향은 글로벌 사업 확대로 잡았다. 올해는 세계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고, 내년부터는 글로벌 사업에 적극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대표는 "제약회사 하면 바로 떠오르는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 차별화되고 특별한 회사를 만들고 싶다"며 "브랜드 자체가 영향력을 가지고, 영진약품이 만드는 제품은 뭔가 남다르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글로벌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설명했다.
<노동법률>이 지난 7월 24일 오후 특별한 성장을 꿈꾸는 이재준 영진약품 대표이사를 만나 그가 그리는 새로운 성장 로드맵을 들었다.
Q 많은 기대를 안고 대표 이사로 부임한 지 1년이 넘었다. 지난 1년은 어떻게 보냈나.
지난 한해는 조직을 파악하고, 정상화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전통적인 제약회사 운영방식에서 최대한 빨리 미래형 비즈니스 모델로 방향 전환하기 위해 턴어라운드(Turnaround) 기점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 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한 결과 지난 4분기쯤 회복세로 돌아섰다. 해외수출 관련 이슈도 해소하고 로컬 공급 이슈도 해결하면서 월별 실적이 기록을 세우기 시작했다. 올 상반기에는 전년대비 20% 넘는 성장률을 보였다. 영업이익도 기대치를 훨씬 웃돌았다.
실적 면에서도 그렇지만 조직문화도 턴어라운드했다. 다른 많은 회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적당히, 지시받은 일만 하는 구성원들이 있었다. 조직 내 체질 개선이 필요했다. 회사는 프로 정신을 가진 사람이 프로답게 일하고 대가를 받는 곳이다. 누군가 적당히 일하는 것을 그대로 둔다면 그 사람에게도, 회사에도 좋지 않다. 회사 차원에서도 노력해야 한다. 구성원들이 시키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회사를 좋아하고, 이 회사에 다니는 자부심이 있고, 우리 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뭔가 남다르다고 느끼는 그런 글로벌 회사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Q 전통적인 제약회사에서 체질 개선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지난해 공항에서 우연히 <스파크>라는 책을 집었다. 미 해병대의 리더십 훈련을 주제로 한 책인데 굉장히 인상 깊었다. 거기에 영감을 받아서 임원들에게 스파크 리더십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기본적으로는 회사에서 빛나는 존재가 되라는 것이다. 우리 회사 화장실을 청소해주시는 분은 내가 화장실을 갈 때마다 거기에 계신다. 누가 보지 않아도, 항상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이다. 타운홀 미팅에서 이분처럼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보지 않아도, 어떤 핑계를 대지 않고 열심히 일해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스파크>에서 말하는 리더십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미흡한 일에 명분을 만드는데, 그 사소한 것 하나가 신뢰를 무너뜨리고, 리더십을 해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미팅이 늘어지면 그다음 일정이 미뤄지고, 시간 약속을 지키기 어려웠다. 그럴 땐 '중요한 업무라서'라고 변명을 붙였다. 하지만 정작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봤느냐는 물음에는 당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고, 명분 만들기보다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우리 구성원들도 이런 깨달음을 얻고 실천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스파크 리더십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임원 교육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서 올해는 지점장들을 대상으로도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람 성격은 못 바꿔도 관점과 태도는 바꿀 수 있다. 그러면 일하는 방식(Way of working)을 바꿀 수 있다.
Q 52시간제 시행으로 제약업계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주52시간제와 관련해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제약산업은 R&D, 생산, 영업 등 다양한 부문이 종합적으로 연계돼 있다. 업계 특성은 물론, 직군별 특성도 고려해서 대응해야 했다. 특히 R&D, 원료의약품 생산 부문의 어려움이 컸다. 실험을 하면 그 경과를 관찰해야 하는데 화학 반응에는 시간이 걸린다. 또 생산공정도 GMP를 반드시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조정하기 힘들다.
먼저 노조와 함께 주52시간 대응TF팀을 꾸려서 생산, R&D, 영업 부문에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영향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각 부문 특성에 맞춰 R&D는 재량근로시간제, 영업은 간주근로시간제를 노사합의로 도입했다. 생산 부문은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고 추가 인력을 채용함으로써 노동시간을 준수할 수 있도록 했다.
Q 올해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어떤 점이 높게 평가받았다고 생각하나.
모든 것이 완벽한 결과로서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고 보지 않는다. 위기 속에서 노사가 함께 걸어 온 과정과 앞으로도 더욱 발전해 나가고자 하는 노사상생의 믿음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영진약품이 업계 최고 수준의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좋은 평가와 기대를 받기도 했지만, 너무 급진적으로 도입하면서 조직 내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또 경영 위기 속에서 임금 협상이라든지 노사 간 어려운 상황도 있었다. 그간 쌓여있던 갈등을 푸는 것도,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소통과 협력으로 풀어가고자 했다. 오히려 어려울 때일수록 회사의 상황, 실적, 리스크를 모두 구성원들과 공유했다. 제대로 경영하기 위해 현재 하고 있는 노력을 설명하면서, 최대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을 조율해왔다. 이런 노력들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게 아닌가 싶다.
Q '소통'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지만 정작 소통이 원활한 기업은 찾기 어려운데.
취임사에서부터 '소통(Communication)과 협력(Collabo-ration)을 통해 가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 먼저 내 개인사부터 세세하게 설명했다. 구성원들이 나를 잘 알아야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이해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각별한 가족사랑 이야기에만 20~30분을 썼던 것 같다. 살아온 이야기를 구성원과 공유하면서 나에게 있어 사랑의 정의, 가족의 개념을 전달했다. 그러면서 우리 구성원들을 가족처럼 여기고, 사랑을 베풀고 섬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사실 내가 노사관계 전문가는 아니다. 컨설팅이나 글로벌 사업 쪽을 담당해왔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다. 또 이런 사실을 솔직하게 말했다. 그래서 오히려 전통적인 노사관계와 다르게 해올 수 있었다고도 생각한다.
우리 노조위원장도 처음에는 당황했던 것 같다. 내가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고, 가족처럼 여긴다고 하니까. 아내가 연주회를 열었는데 회사 임원진과 노조위원장도 초대했다. 다들 축구를 좋아해서 월드컵도 같이 봤다.
또 우리 노조 분들이 합리적이다. 무조건 어떤 요구를 받아내야겠다는 자세는 아니다. 서로 대화가 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사실 우리 노사는 비전이 같다.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Q 노사관계를 긍정적으로 발전시킨 핵심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노동자도 사용자도 모두 행복해야 하는데, 그 행복은 대부분 실적에서 나온다. 처음 노조에 지적받은 부분도 그 부분이었다. 이전에는 과거 실적에 따라 연말성과금이 나왔고, 실적이 좋지 않을 때도 적게나마 나왔는데, 지금은 도대체 경영을 제대로 하고 있는것이냐고 묻더라.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설명 드리기도 했지만, 우리 노사관계가 회복된 데에는 실적 회복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경영자로서 경영 성과를 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경영 성과가 좋으면 간접적으로 복지도 좋아진다. 소통을 늘리거나, 사내 문화를 만드는 것은 오히려 쉬운 편이다.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하면 된다. 물론 구성원들의 성과도 중요하다.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업무에 대한 성과를 내야 한다.
Q 경영 성과를 내기 위한 구체적인 방향은.
글로벌 사업 확대가 돌파구라고 생각한다. 특히 글로벌 라이센싱에 중점을 두고 있다. 내가 영진약품에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반 로컬 제약회사였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을 거다.
국내 내수 시장에는 한계가 있다. 좁은 시장에서 경쟁하기보다는 해외 시장으로 나가는 게 회사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년부터는 글로벌 사업 확대를 핵심전략으로 밀고 나갈 계획이다. 일본, 중국 시장에 진출하긴 했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나사는 아폴로 로켓 10개를 쏘고 11번째에 달에 착륙시켰다. 우리는 지금 아폴로 2호나 3호 정도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Q 좋은 회사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경영 철학은.
건강한 회사를 만들기 위한 나만의 원칙이 있다. 정직성(Integrity), 책임감(Accountability), 공정성(Fairness), 열정(Passion) 4가지다. 영진약품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올 수 있었던 이유도 이 4가지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에게, 주주들에게 정직하고 공정한 경영을 책임감 있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말로만 열거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일관성 있게 발언하고 행동하려고 해왔다.
처음 취임사에서 채용과 승진은 남녀노소 차별 없이 진행하고 이를 위해 기준을 선진화하겠다고 밝혔다. 속된 말로 라인을 잘 타서, 임원이기 때문에 혜택받는 것은 없을 거라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누군가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하면 먼저 가서 사과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 가치관이 건강한 노사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내가 하려는 것이 노동자 측에서 봐도 공평한 것인지 생각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왜 이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직접 설명하고 의견을 나눈다. 징계위원회나 인사 문제도 마찬가지다. 공정한 징계를 내리면, 이후에는 책임감을 가지고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해당 구성원을 재활시키고 다시 활약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신뢰가 쌓이면 구성원들도 경영진이 하는 일을 믿어준다.
Q 영진약품의 대표이사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제약회사' 하면 바로 떠오르는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 차별화되고 특별한 회사를 만들고 싶다. 최근에 자주 사용하는 말이 애플의 슬로건이다. Think different. 새롭게 생각하고 다르게 생각해서 차별화된 기업을 만들고 싶다. 글로벌 회사로 도약한다고 했는데, 국내에 많은 대기업들의 모습이 아닌 애플 같은 글로벌 회사가 됐으면 한다. 브랜드 자체가 영향력을 가지고 회사 구성원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노블 제약회사를 만들고 싶다.
일단 올해는 지금 실적 패턴을 잘 유지하면서 마무리 짓고 싶다. 다양한 잠재된 리스크를 먼저 파악하고 대응해서 내년에도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싶다.
이재준 영진약품 대표이사
1999.04 ~ 2005.08 A.T. Kearney. USA Corporate/ BU strategy Senior Manager
2005.09 ~ 2008.07 삼성전자 Global Marketing Operations 그룹장
2008.07 ~ 2012.07 GSK Strategy & Business Development 상무
2012.08 ~ 2018.03 동아ST 글로벌 사업본부 전무
2018.03 ~ 현재 영진약품 대표이사
임고은 기자 goi@elabor.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