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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6-23 16:27:36
수정 : 2020-07-02 09:38:34

[현장] 日 ‘부업ㆍ겸업’ 촉진에 박차 … 겸업 시 발생 사고도 산재 적용

2020-06-23 16:27:36

日 ‘부업ㆍ겸업’ 촉진에 박차 … 겸업 시 발생 사고도 산재 적용

[2020년 7월호 vol.350]

최근 일본 생활용품 기업 라이온이 다른 기업 직원을 대상으로 채용공고를 냈다.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 신규 사업 육성에 박차를 가한다는 목적이다. 신규 사업 개발 부문 5명을 전속이 아닌 개인 업무위탁 형식으로 계약하고, 이들은 주 1일 근무, 원격ㆍ재택근무도 가능하다.

라이온의 겸업 인재 채용은 일본 대기업의 겸업 허용ㆍ장려 움직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현재 야후 재팬, 소프트뱅크, 파나소닉, 닛산 자동차 등 다수의 대기업이 직원의 부업ㆍ겸업을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업 간 인재 유치 경쟁, 정부의 겸업 장려와 코로나19에 따른 원격근무 확산이 맞물리면서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 정부 '겸업 제한' → '겸업 금지' 제한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 2018년 모델(표준) 취업규칙을 개정했다. 부업ㆍ겸업을 제한하던 내용을 삭제하고, 부업ㆍ겸업을 허용하는 내용을 새롭게 추가했다. 정부가 '일하는 방식 개혁 실행 계획'에 부업·겸업 보급 촉진을 내건 데 발맞춘 대응이었다.
개정 전 표준 취업규칙은 노동자가 '근무 이외의 시간에 다른 회사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후생성은 이러한 내용을 삭제하고 '부업·겸업'장(章)을 신설해 "노동자는 근무시간 이외의 시간에 다른 회사 등의 업무를 종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넣었다. 이와 함께 사전 보고 의무와 제한 범위 규정을 함께 넣어 무분별한 겸업은 방지했다.

▲ 후생노동성이 개정한 '모델(표준)취업규칙'에서 새롭게 신설한 부업·겸업 장(章)

취업규칙 개정 방향은 일본 판례와 결을 같이 한다. 일본 법원은 '노동자가 근무시간 이외의 시간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는 기본적으로 노동자의 자유'라고 판단하고 있다. 기업이 이를 제한 할 수 있는 범위로는 ▲업무에 지장이 발생할 경우 ▲기업 비밀이 유출될 경우 ▲기업의 명예·신용을 훼손하거나 신뢰 관계를 파괴하는 행위가 있을 경우 ▲기업 간 경쟁에 따라 회사 이익에 손해를 끼칠 경우 등으로 좁게 보고 있다.

후생성은 표준 취업규칙 개정에 그치지 않고 '부업·겸업 촉진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기업의 부업·겸업 활용을 촉진했다. 기업이 겸업을 허용할 경우 ▲사내에서 얻을 수 없는 지식과 기술 획득 ▲근로자의 자율성·자주성 확립 ▲우수한 인재 획득 및 유출 방지를 통한 경쟁력 향상 ▲외부 정보 및 인맥을 통한 사업 확대 기회 등의 이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직원들의 겸업을 허용한 식품기업 카고메도 '겸업으로 얻은 지식·경험을 신규 사업 및 아이디어 창출과 같은 형태로 기업에 환원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가이드라인은 많은 기업이 우려하는 노동자 총 근무시간 파악·관리 어려움, 업무 집중 저하 우려, 기업 비밀 유출과 관련해서는 근로자와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겸업을 희망하는 근로자에게 사전에 기업 비밀 준수 의무를 주의시키고, 부업·겸업의 근로시간 및 업무 내용 등을 사전에 제출하는 시스템을 만들도록 제안했다.

■ 대기업 '들썩'…지방공무원까지 겸업 독려

지난해 일본 식품기업 카고메는 '겸업으로 얻은 지식·경험을 신규 사업 및 아이디어 창출과 같은 형태로 기업에 환원하기 위해' 직원들의 겸업을 허용했다. 아사히 맥주도 올해 1월부터 재직 5년 이상의 사원을 대상으로 겸업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사측은 허용이라고 밝혔지만 사실상 장려에 가깝다. 아사히 맥주는 '부업 휴가'를 신설해 월 최대 2회 부업을 위한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근로자의 능력 향상 및 활용 확대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다른 회사와 업무위탁계약을 맺는 형태나 개인사업주로서 수입을 얻는 형태만 허용된다. 다른 회사와 근로계약을 맺는 것은 금지된다.

근로자들의 겸업 열기도 뜨겁다. 겸업 희망 근로자와 기업을 연결하는 매칭 플랫폼인 'Another works' 등록자 수는 지난 3월 중순 5,000명을 돌파한 이후 4월 말 약 8,500명까지 늘어났다. Another work 관계자는 코로나19발 휴업으로 발생한 감소한 수입을 보충하려는 근로자와 재택근무 확산으로 활용 시간이 확대된 근로자가 겸업 시장으로 쏠렸다고 분석했다.

지방공무원의 겸업도 확대되는 추세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공무원의 영리 목적 활동을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다만 지방공무원의 경우 임명권자의 허가를 받으면 부업 및 겸업이 가능해진다. 이에 일본 총무성은 부업을 희망하는 지방공무원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1월 각 지자체에 부업 허가 기준을 작성하도록 요청했다. 현재 고베시, 후쿠이현, 나가노현 등에서 '공익성이 높은 활동'에 한해 지방공무원이 수입을 얻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 겸업하다 발생한 사고, 위험 부담은 누가?

겸업이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겸업 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 문제도 수면위로 떠올랐다. 장시간 노동으로 발생한 사망·사고 및 겸업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한 책임을 누가, 어떻게 부담하느냐에 현장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에 일본 국회는 지난 3월 노동자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을 개정해 부업·겸업 근로자 산재 인정 범위와 산재보험급여액 산정 기준을 대폭 확대했다.

기존 산재법은 월수입 200만원의 A회사와 월수입 100만원의 B회사에서 겸업하는 근로자가 B회사 사업장에서 사고를 당한 경우, B회사 월수입 100만원을 기준으로 산재보험급여액을 산정했다. 어떤 사업장에서 산재가 발생하느냐에 따라 근로자 생계를 좌우하는 보험급여액이 크게 달라지는 데 대해 많은 지적을 받았다. 개정 산재법은 본업과 겸업 사업장을 가리지 않고, 근무 중 발생한 재해로 부득이하게 근로할 수 없을 경우 본업과 겸업의 임금을 합산해 보험금여액을 산정하도록 했다. 개정 산재법에 따르면 위 근로자는 산재 발생 시 총 300만원의 월수입을 기준으로 산재보헙금여액이 산정된다.

과로 및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도 본업과 겸업의 전체적인 인과관계를 고려하기로 했다. 각각의 사업장에서 노동시간이 '과로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총 노동시간이 '과로 기준'에 달하면 업무 관련성을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존 산재법에서는 뇌심혈관질환 산재 인정과 관련해 '단일 사업장'에서 발병 전 1개월간 100시간이 넘는 시간외근무가 있었으면 업무 관련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A회사에서 주 40시간을 근무하고 B회사에서 주 25시간을 근무한 근로자에게 뇌심혈관질환이 발생하더라도 산재로 인정받기는 어려웠다. 단일 사업장에서의 시간외근무가 월 100시간을 넘는 것이 주요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해 복수의 취업처에서 근무한 시간을 전체적으로 고려해 질병, 사망 등의 업무 관련성을 판단하도록 했다.

한편 한국은 투잡, 쓰리잡을 넘어 n잡 노동자가 크게 늘어난 데 비해 관련 논의는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복수 사업장 근무 노동자 산재 적용 논의도 배달노동자 등 초단시간 플랫폼 노동자 위주로 제한돼 있다. 통상적으로 회사에 근무하면서 퇴근 이후, 주말 동안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근로자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당연히 겸업 시 발생하는 재해에 대한 보상 논의도 부족하다.

박종태 노무법인 봄날 공인노무사는 "현재 상용근로자의 산재 발생 시 휴업급여는 두 개 사업장의 평균임금을 합산해 산정하지만, 일용직의 경우에는 재해 발생 사업장만을 기준으로 산정되고 있다"며 "정부 노동정책의 큰 방향이 장시간 노동의 폐해를 최소화하는데 있기 때문에 부업·겸업을 활성화하거나 이를 보호하는 측면에서의 논의는 소극적인 것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임고은 기자 goi@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