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가 무산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내부 반발로 42일간 진행됐던 원 포인트 노사정 대화가 물거품이 됐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불씨를 살리려는 모양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대화에 참여했던 다른 주체들은 민주노총과의 노사정 대화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시간낭비"였다는 혹평도 나온다. 민주노총이 1노총 지위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고립을 자처했다는 평가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1일 오전 민주노총 건물로 들어서던 중 조합원들에게 저지당하고 있다.

민주노총 내부 반발로 노사정 합의 무산..."핵심 요구 반영 안 돼"

노사정 대화에는 민주노총,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대한상공회의소,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등 6자가 참여했다. 노사정은 지난 1일 협약식을 열고 합의안을 확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협약식을 앞두고 민주노총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중집)가 지난달 29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회의에서 잠정 합의안에 대한 어떠한 결론도 내지 못한 것이다. 중집 위원 다수가 합의안 내용을 놓고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중집에서 결정한 핵심요구가 담기지 않았다는 이유다. 김 위원장은 당시 중집 도중 노동부 장관을 만나는 등 강한 합의 의지를 내비쳤다.

가장 첨예한 쟁점 중 하나는 고용유지 노력 조항이었다. 합의문에는 "경영계는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경영 악화 상황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 경영 개선 노력을 선행하고, 상생과 협력의 정신을 발휘해 고용이 유지되도록 최대한 노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가운데 '노력한다'는 대목이 도마 위에 올랐다. 재난기간 해고금지를 핵심요구로 결정한 민주노총 최종입장보다 후퇴했다는 것이다. '고용유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모호한 표현으로는 고용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특히 인력 감축 우려가 큰 산별조직과 지역본부들이 반대 의견을 밝혔다. 반면, 사무ㆍ전문직종 산별조직은 대체로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한 산별조직 관계자는 "지난 중집에서 결정한 고용보험과 관련된 내용, 고용유지와 관련된 내용 등은 (노사정) 교섭의 가이드라인인데 그게 (잠정 합의안에) 관철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중집에서 결정했던 핵심요구는 노동조합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더 중요한 것인데 실효성 있는 내용들은 노사정에서 합의를 보지 못하고 추상적 합의를 통해 악용될 소지만 만들어주면 안 된다는 게 중집 위원들의 판단"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충분히 설득을 시도했다고 판단, 1일 오전 중집을 다시 소집해 합의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뒤 이날 협약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전날 중집에서 협약식에 참석하지 말라는 결정을 내린 것도 아니었던 만큼 충분히 참석 가능하다는 해석도 나왔다.

참석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현장투쟁 복원과 계급적 연대 실현을 위한 전국노동자모임'(전국모임) 등 민주노총 조합원 50여 명이 김 위원장 출근을 저지했다. 이들과 면담을 하기로 하고 민주노총 건물에 진입한 김 위원장은 중집 회의장에서 또다시 발이 묶였다.

오지환 전국모임 집행위원장은 합의안이 구조조정 발판이 될 수 있다며 날을 세웠다. 오 위원장은 "전체적인 기조가 노사 고통분담이라고 하는데 실제 사용자들은 고용유지를 위한 노력 정도에 불과하다"며 "코로나19 위기로 매출이 급감해 경영위기가 발생하면 사업주들이 고용유지를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휴업할 때 노동계가 적극 협조한다고 돼 있는데 저희는 그것이 구조조정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오른쪽)이 지난 1일 오전 출근을 저지한 조합원들과 면담을 갖기로 한 뒤 민주노총 건물에 들어서고 있다.

민주노총 다른 임원이 김 위원장 대신 협약식에 참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평소 당뇨와 혈압이 있던 김 위원장은 이날 물리적 대치 과정에서 겪은 스트레스 등으로 잠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김 위원장은 같은 날 오후 임시대의원대회(임시대대)를 소집하고 중집을 다시 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민주노총 주요 정파 중 하나인 민주노동자전국회의(전국회의)가 임시대대 소집과 노사정 합의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전국회의는 입장문을 내고 "민주노총의 (해고금지) 요구에 대해 기업 측은 임금 등의 양보를 요구하는 바람에 '총고용 보장 해고금지'는 합의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또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등 민주노총 핵심 요구사항이 합의안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합의 이행 점검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맡는 점도 비판했다. 전국회의는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가하고 있지 않은 조건에서 민주노총의 개입 공간은 없다"고 했다.

지난 2일 오후 중집이 다시 열렸다. 중집은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합의안은 중집 위원 다수의 반대로 결국 추인을 얻지 못했다. 임시대대 소집도 반대하는 의견이 더 많았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오는 20일 임시대대를 소집하고 노사정 합의안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겠다고 못 박으며 폐회를 선언했다.

노사정 합의안, 경사노위 논의 내용과 유사..."시간낭비였다"

합의 불씨를 살리려는 김 위원장과 달리 원 포인트 대화는 이미 끝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노총도 원 포인트 노사정 대화를 통한 합의는 물 건너갔다고 본다.

한국노총은 지난 1일 논평을 내고 "민주노총 불참으로 원 포인트 사회적 대화가 최종 무산됐다"며 유감을 표했다. 한국노총은 "고용 불안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노동자들에게 하루 하루는 한숨과 고통의 시간"이라며 "이 대화를 처음 제기한 정부와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가 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소모의 시간으로 끝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원 포인트 대화 차원의 합의 시도는 끝났다"고 잘라 말했다.

정부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대화에 참여했던 나머지 대표들과 국민들에게 실망을 드린 민주노총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우리 사회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는 그 자체로 중요하다"며 "이번 합의 정신은 존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1일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장 앞을 지키고 있다.

원 포인트 노사정 대화에 관여했던 관계자들은 "시간낭비였다"고 입을 모았다. 경사노위에서 코로나19 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했다면 보다 빠르게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경사노위는 이미 지난 3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선언하기도 했다. 당시 노사는 코로나19 피해에도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 조정, 교대제 개편 등을 통한 근로시간 단축ㆍ휴직 등의 조치를 적극 실시하고 최대한 협조하기로 했다. 정부는 고용유지지원금을 확대하고 지급기준을 완화해 노사 고용유지 노력을 확산하기로 뜻을 모았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이미 경사노위에서 지난 3월에 선언적 합의를 했었고, 경사노위 산하 양극화해소와고용플러스위원회(양극화해소위),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에서 구체적인 논의와 합의를 이뤄낼 수 있었는데 우리가 시간낭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양극화해소위에서 논의됐던 내용을 보면 이번 합의안과 유사한 대목들이 눈에 띈다. 양극화해소위가 코로나19 의제를 처음 제시한 건 지난 4월 23일 제7차 전체회의 때다.

당시 한국노총은 해고금지법을 조기 입법하거나 기업에 고용유지를 전제로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사용자단체에 해고중단을 권고하고 사용자단체는 회원사들에게 이를 지침으로 시달할 것을 제안했다.

경총은 휴업, 휴직, 전환배치 등을 적극 활용해 고용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인건비 절감, 근로시간 단축, 휴업ㆍ휴직 등에 노동계가 협조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노사정 합의안에 담긴 고용유지 관련 내용은 경총 입장과 유사하다.

고용유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로 정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노사정 합의만으로 개별 사업장에 해고금지를 강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용유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가 노사정 합의로 정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민간의 경우 (고용유지를)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노력한다'고 정리하는 게 현실적인 것이고, 기간산업의 경우에는 고용유지 책임과 이행 점검을 묶어서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고용보험, 직업훈련, 상병수당 등에 관한 의제들이 이미 양극화해소위에서 논의되고 있었다. 양극화해소위는 지난 4월 27일 확대간사회의를 통해 상당 수준 합의에 이르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합의안 문구까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합의문을 작성하다 중단됐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이 원 포인트 대화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건 같은 달 11일이다. 한국노총은 이날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사회 준비를 위해 모든 의제와 형식을 열어 놓고 대화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임시대대서 동의 얻어도 합의 이행 시 실천력 담보 못 해"

원 포인트 노사정 대화는 민주노총이 지난 4월 처음 제안했다. 이후 민주노총 스스로 판을 엎었다. 김 위원장이 임시대대 동의를 얻어 다시 판을 깔려고 하지만 난항이 예상된다.

당장 중집 위원들 다수가 임시대대 소집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중집 위원들은 지난 3일 성명을 내고 "김명환 위원장과 주요 지도부는 재벌과 자본의 책임이 빠진 노사정 잠정 합의안을 폐기해야 한다"며 "조직을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가는 일방적 임시대대 소집 선언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성명에는 산별조직 16개 중 10개 조직(금속노조, 화학섬유연맹, 건설산업연맹, 공무원노조, 공공운수노조, 비정규교수노조, 전국교수노조, 여성연맹, 민주일반연맹, 전교조)이 참여했다. 지역본부 대표자 16명이 이름을 올렸고 민주노총 부위원장 6명(봉혜영, 양동규, 엄미경, 윤택근, 이상진. 정혜경)도 동참했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 안팎에서는 임시대대가 열린다고 해도 합의안이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임시대대가 정족수 미달로 유회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합의에 반대하는 산별조직들이 임시대대 불참 방침을 정하면 완전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물론 섣부른 추측일 수 있다. 중집 위원 성명에 이름을 올린 한 산별조직 관계자는 "그건 너무 많이 나간 것"이라며 "우리가 다수이고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전술을 쓸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성명을 놓고 올해 말 예정된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가 이미 시작됐다는 평도 내놓고 있다. 성명에 참여한 이들을 보면 여러 정파가 다양하게 포진돼 있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을 지지했던 정파 역시 명단에 포함돼 있는 점을 보면 선거를 앞두고 꼬리 자르기가 아닌 '머리 자르기'에 나선 것이라는 관전평도 들린다.

만약 합의안이 임시대대를 통과한다 해도 한계는 있다. 노사정 대화와 관련이 깊은 한 전문가는 "보이지 말았어야 할 조직의 치부까지 다 보여주며 격렬한 반대가 표출된 상황에서 임시대대를 통해 대의원들에게 가까스로 동의를 얻는다 해도 향후 이행과정에서 실천력을 담보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고 내다봤다.

임시대대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민주노총 위상이 추락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 전문가는 "'어떤 것도 내놓을 수 없다'는 자세로 반대한다면 사회적 대화로 나오지 말아야 한다"며 "민주노총이 양자택일 같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노동운동 방식을 견지한다면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시대를 이끌어가는 개혁세력으로서의 위상이 실추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경사노위는 원 포인트 합의를 전제로 후속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주 중 경사노위 산하에 별도 회의체를 구성해 합의안 주요 내용을 논의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의제개발조정위원회가 초안을 만들어 올리면 본위원회에서 큰 이견 없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대영 기자 kdy@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