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들어가며
최근 국제화의 진전과 함께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한민국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노무를 제공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는 경우 어느 나라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는지 문제 된다.
국제사법 제28조 제3항은 "근로계약의 경우에 근로자는 자신이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거나 또는 최후로 일상적 노무를 제공하였던 국가에서도 사용자에 대해 소를 제기할 수 있으며, 자신이 일상적으로 어느 한 국가 안에서 노무를 제공하지 아니하거나 아니하였던 경우에는 사용자가 그를 고용한 영업소가 있거나 있었던 국가에서도 사용자에 대해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상적 노무제공지의 개념과 관련해 유럽사법재판소(Court of Justice of the EU, 이하 'CJEU')에서 2017.9.14. 매우 중요한 판결을 선고했다. 이 글에서는 위 판결에 관해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02. 사실관계
가. 피고들의 지위
라이언에어(Ryanair)는 아일랜드(Ireland)에 본사를 둔 아일랜드 항공사로, 벨기에 소재 샤를루아 공항(Charleroi Airport)을 모기지(母基地, home base)로 하는 국제항공여객운송인이다. 크루링크(Crewlink)는 유럽 각국에서 객실승무원(cabin crew)으로 종사하려는 사람들을 채용해 승무원교육을 실시하고, 항공사에 취업을 알선해주는 아일랜드 회사다.
나. 근로계약의 체결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국적을 가진 6명의 원고들은 2009년부터 2011년 사이에 (일부는 크루링크의 알선으로) 라이언에어에 객실승무원으로 취업햇다. 원고들과 라이언에어 사이에 스페인, 벨기에 등에서 체결된 근로계약서는 영어로 작성됐는데, 사용자 측 및 일부 근로자의 최종 서명은 라이언에어의 본사 소재지인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이뤄졌다.
근로계약에 의하면, 근로계약의 준거법(準據法)은 아일랜드 법으로 지정하고, 근로관계에 관한 소송은 아일랜드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있으며, 노무제공은 아일랜드에 등록된 라이언에어 소속 항공기에 탑승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므로 노무는 아일랜드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원고들의 임금은 아일랜드 은행 계좌로 지급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다. 근로조건
원고들은 모두 벨기에로 인사발령을 받았고, 샤를루아 공항이 근로계약상 모기지로 지정됐다. 원고들은 1시간 이내에 모기지에 도착할 수 있는 곳에 거주할 의무가 있었으므로, 벨기에로 이주했다. 이와 같이 원고들은 아일랜드에 거주하지 않았고, 일부 원고는 계약서 서명과 아일랜드 은행 계좌 개설을 위해 단 1회만 아일랜드를 방문한 경우도 있었다. 원고들은 샤를루아 공항에서 근무일(working day)의 업무(여객 안전 확보, 기내 면세품 판매, 기내 청소 등)를 시작하고 종료했다.
또한 원고들은 사를루아 공항에서 라이언에어의 인트라넷 사이트(intranet site)를 통해 업무지시를 받았고, 위 공항에서 질병 등을 이유로 한 결근사유서를 작성하거나 업무(징계 목적 포함)상 회의에 참석했다. 라이언에어는 벨기에에 지사(branch office)를 설치하지 않았지만, 라이언에어와 크루링크는 샤를루아 공항에 있는 승무원실(crew room)을 공동으로 사용했다.
라. 제1심 법원의 판단
원고들은 근로계약이 종료된 후 2011년도에 라이언에어와 크루링크를 상대로 벨기에 샤를루아 노동법원(Tribunal du travail de Charleroi)에, 벨기에 법에 규정된 근로조건이 아일랜드 법에 규정된 근로조건보다 유리하다고 주장하면서, 벨기에 법령을 준거법으로 해 근로관계 종료에 따른 미지급임금(연장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 연차휴가수당 등)으로 원고 1인당 2만 유로의 지급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피고들(라이언에어, 크루링크)은 근로계약에 아일랜드 법원을 국제재판관할권이 있는 법원으로 명시했으므로, 벨기에 법원에는 이 사건의 관할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샤를루아 노동법원은 2013.11.4. 피고들의 항변을 받아들여, 이 사건에 관한 국제재판관할은 아일랜드 법원에 있고, 샤를루아 노동법원에는 관할권이 없다고 판단했다.
마. 항소심 법원의 질의
원고들은 2013.11.28. 위 판결에 항소를 제기했고, 항소심을 담당한 벨기에 몽스 고등노동법원(Cour du travail de Mons)은 2016.3.18. 유럽사법재판소(Court of Justice of the EU, 이하 'CJEU')에 "근로계약에서 약자인 근로자는 일반적 규정이 제공하는 것보다 근로자에게 더 유리한 관할규정에 의해 보호돼야 한다"는 규정에 입각해 이 사건에 관한 국제재판관할권을 결정할 목적으로, "①국제항공운송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경우 브뤼셀 규정(Brussels I Regulation)의 '일상적 노무제공지(The place where the employee habitually carries out his/her work)'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②민간항공에 관한 EU 규정(Regulation No. 3922/91)에서 규율하는 민간항공산업의 모기지가 일상적 노무제공지와 같은 개념인지 여부"에 관해 질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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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 규정
제5절 근로계약에 관한 관할
제18조 (1) 개별 근로계약에 관한 사건에 대한 관할은 이 절에 의해 결정된다. 이 경우 제4조, 제5조 제5호에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2) 근로자가 회원국에 주소를 갖지는 않으나 지점-대리점-기타 영업소를 갖는 사용자와 개별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사용자는 지점-대리점-기타 영업소의 운영에서 발생하는 분쟁에 관해서는 그 회원국에 주소를 갖는 것으로 본다.
제19조 회원국에 주소를 갖는 사용자에 대한 소는 아래의 법원에 제기할 수 있다.
1. 그가 주소를 갖는 회원국 또는
2. 다른 회원국의
(a) 근로자가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거나 또는 최후로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했던 곳의 법원 또는
(b) 근로자가 일상적으로 어느 한 국가 안에서 노무를 제공하지 아니하거나 아니했던 경우에는 사용자가 그를 고용한 영업소가 있거나 있었던 장소의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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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법무총장의 의견
법무총장(Advocate General)은 의견서에서, 국제재판관할을 결정할 때 승무원이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곳은 항공법규에서 규정하고 있는 모기지와 유사하지 않고, '승무원이 사용자를 위해 주로 업무를 수행하는 곳(the place where or from which the worker principally carries out his obligations vis a vis his employer)'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승무원이 사용자를 위해 주로 업무를 수행하는 곳'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법원은 ①승무원이 근무를 시작하고 종료하는 곳, ②승무원이 업무를 수행하는 항공기가 주로 주기(駐機)된 곳, ③사용자가 전달한 지시사항을 알게 되고 근무일(working day)을 조직하는 곳, ④근로계약상 승무원이 거주할 의무가 있는 곳, ⑤사용자가 제공하고 승무원이 사용할 수 있는 사무실이 있는 곳, ⑥승무원이 업무에 부적합하거나 징계사유가 발생할 때 참석할 의무가 있는 곳 등을 특별히 주의 깊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03. 판시사항
(1) 근로계약에서 관할합의는 분쟁 발생 이후에 이루어진 경우 또는 근로자가 피고의 주소지국 또는 근로계약의 특별관할규정이 정한 법원 이외의 법원을 추가로 지정하기 위해 이를 원용하는 경우에만 효력이 있는바, 이 사건에서 분쟁 발생 이전에 아일랜드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을 부여하기로 한 계약조항은 효력이 없다.
(2) 일상적 노무제공지는 승무원이 근로의무의 핵심적인 부분을 수행하는 곳을 의미하는바, 구체적으로는 승무원이 운송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곳, 승무원이 업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곳, 승무원이 사용자로부터 지시를 받거나 업무를 조직하는 곳, 승무원의 작업도구가 있는 곳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3) 국제항공운송에 종사하는 승무원의 일상적 노무제공지를 판단할 때 모기지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려할 수는 있지만, 브뤼셀 규정에서 규율하고 있는 일상적 노무제공지와 민간항공에 관한 EU 규정(Regulation No. 3922/91)이 규율하는 모기지는 입법 목적이 서로 다르므로, 일상적 노무제공지와 모기지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4) 승무원들이 탑승해 근로를 제공하는 항공기의 국적(機籍國, 시카고 협약 제17조가 규정하는 항공기 등록국)은 일상적 노무제공지를 판단할 때 고려할 사항은 아니다.
(5) 위와 같은 점을 고려하면, 이 사건에서 원고들의 일상적 노무제공지는 모기지 소재국인 벨기에이므로, 이 사건의 국제재판관할권은 벨기에 법원에 속한다.
04. 해설
가. 의의
국제사법에 의하면 일상적 노무제공지는 국제근로계약의 준거법 결정(제28조 제2항), 국제재판관할의 결정(제28조 제3항, 제4항)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선원근로계약에서는 선적국(船籍國)을 선원의 일상적 노무제공지로 볼 수 있으나, 국내 항공사에 파견된 외국인 조종사의 경우에는 기적국(機籍國) 또는 항공사 소재지인 우리나라를 운항승무원의 일상적 노무제공지로 볼 수 없다는 선례가 있을 뿐, 일상적 노무제공지의 개념을 정면으로 다룬 판례는 보이지 않는다.
대상사안에서 CJEU는 국제항공운송에 종사하는 객실승무원의 일상적 노무제공지에 관해 최초로 판단기준을 제시했는바, 이는 우리나라 국제사법의 모범이 됐던 브뤼셀 규정의 해석이므로, 국제항공운송 승무원에 관해 국제사법상 일상적 노무제공지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호에 계속>
